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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 석굴암에서 사라져 버린 5층소탑
 관리자  | 2008·06·05 19:00 | HIT : 22,673 | VOTE : 489
1909년 가을의 일이었다. 신라의 고도 경주 일원의 고적을 보러 온 일제 고관일행이 있었다. 2대 통감이 된 소네아라스케가 초도순시라 하여 수행원을 거느리고 경주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불국사로 해서 석굴암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간 후 석굴암 안에 있던 아름다운 대리석 오층소탑이 온데 간데 없이 증발했다. 소네가 개인적으로 탐을 내었거나 아니면 어딘가에 선물하기 위해서 일본으로 빼돌린 것이 분명했다.

일본인들조차 그것은 소네가 가져갔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증언기록들이 그 사실을 명백히 알려준다. 먼저 경주박물관 초기(1930년 전후)에 촉탁으로 관장을 대리했던 모로가의 증언이다. "지금 석굴암의 9면관음(11면 관음의 잘못) 앞에 남아 있는 대석위에 불사리가 봉납됐었다고 구전되는 소형의 훌륭한 대리석제의 탑이 있었는데 지난 명치 41년 봄(42년 가을의 착오, 1909)에 존귀한 모 고관이 순시하고 간 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애석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다음은 한국의 미술과 민예의 열렬한 연구가였던 야나기 무네요시의 언급이다. "목격자의 술회를 빌면 11면관음 앞에 작고 우수한 오층소탑 하나가 안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소네 통감이 가져갔다고 말하고 있으나 정말인지는 알 수 없다."

1925년까지 10여 년가 경주에 살면서 신라의 유적을 조사, 연구한 후 1929년에 '조선 경주의 밀수' 이란 책을 낸 나카무라도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불타(석굴암의 본존상) 뒤의 9면(11면)관음 앞에 자그마하고 우수한 오층석탑이 안치돼 있었는데 언젠가 사라져 지금은 볼 수가 없다. 쓸쓸히 대석만 놓여져 있을 뿐이다. 풍문을 빌리면 모씨의 저택으로 운반되어 갔다는 것이다.

이상의 여러 증언으로 미루어 석굴암의 오층소탑의 증발이 소네 통감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은 명백하다. 1976년의 '석굴암 수리공사 보고서' 도 과거의 굴내 오층소탑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소네에 의해 약탈되었다" 고 명기하고 있다. 석탑을 약탈한 후 석굴암은 탑상을 구비하였던 본래의 모습을 상실하고 불상들만 있는 석굴이 되고 말았다. 이는 오늘날 국보 중의 국보인 석굴암으로서는 커다란 상처이다.

석굴암의 오층소탑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해방 후 국내 관계전문가들이 일본안의 행선지를 백방으로 탑색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국내 전무가들은 아직도 정보추척을 포기하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이 아름다운 오층소탑이 일본의 어딘가 에서 언젠가는 발견될 것으로 믿고 있다.
(자료출처 : 한국문화재 수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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